70년간 이어진 남북 ‘전단 전쟁’
‘오물 풍선’은 시나리오의 일부
북, 서해 접경 도발 준비할 수도
뒤통수 치기 공세 미리 대비해야
‘오물 풍선’은 시나리오의 일부
북, 서해 접경 도발 준비할 수도
뒤통수 치기 공세 미리 대비해야
① 북한은 왜 오물을 날렸나
게다가 북한은 자극적인 전단 내용의 전파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으로 날린 전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하거나, 그의 부인을 비하하는 내용도 담겼다. 북한의 체제 운영 원리인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융화묵과(融和默過)하지 말고 비상 사건화”하도록 하고 있다(3조3항). 한국을 찾았던 북한 응원단이 비에 젖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울며 한국 정부에 항의하며 수거에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지난달 25일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하며 군사 분야에서 대남 공세적 대응과 서해 충돌을 암시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오물 풍선이 대북 전단에 대한 대응 차원을 넘어 의도적인 긴장 조성을 위한 유인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남북 ‘전단 전쟁’의 오랜 역사
휴전 이후에도 남북의 전단 살포는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수시로 전단을 날려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했다. 한국은 국민(초등)학교에서 북한의 전단을 발견할 경우 신고하도록 교육하고, 발견한 전단을 학교나 경찰에 가져가면 책받침이나 자, 노트 등 학용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국이 체제 경쟁에서 확연히 우위를 점하고, 90년대 북한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대남 전단은 줄어들었다. 반면, 한국은 탈북민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간단체들이 20여년 전부터 북한의 핵 개발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전단을 공개적으로 날렸고, 북한은 반발했다. 북한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쏘며 대응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이 쏜 탄환이 남측 접경지역 민가에 떨어지기도 했다. 남북은 돌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2018년 전단 살포를 비롯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③ ‘치고 빠진’ 북, 여기서 멈출까
북한은 지난 2일 잠정적으로 오물 풍선 살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국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키로 하긴 했지만 9·19 군사합의를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고 조건부로 무효화하며 나름대로 관리에 나선만큼 북한 역시 여기서 멈춘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정치국 회의(지난달 24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지난달 25일) 등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추가 움직임도 예상된다. 북 국방성 부상은 담화에서 대남 대응 방향 세 가지를 공개했다. 대남 공세적 대응, 해상 주권 보호를 위한 자위력 행사, 오물 풍선 살포 등이다. 이후 북한은 정찰위성과 18발의 초대형 방사포 동시 발사,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군사적 행동에 나섰다. 오물 풍선이 치밀한 시나리오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에 한국이 대북확성기 카드를 꺼내 들자 수 시간 만에 오물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게 확성기가 무서워서라기보다 일종의 연막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이 언급한 해상, 즉 서해의 긴장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서해는 한반도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전, 연평·대청 해전 등 북한의 도발과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헌법을 개정하고 영토 조항을 삽입하도록 했다. 북한이 헌법에 해상 경계선을 현재의 북방한계선(NLL)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NLL 이남으로 삼을 경우 남북 간 경계선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 우려가 있다. 북한이 이번 여름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등을 도발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이나 목함지뢰 등 한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뒤통수 치기 도발에 나선 전례가 있다. 지난 2일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를 잠정 중단한 뒤 일단 잠잠하다. 어쩌면 기상천외한 ‘방법’을 준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풍선이 오가며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풍선은 바람의 방향에 좌우되지만 군사적 충돌은 남북 정책결정권자들의 의지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