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37’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동주' 각본·제작 신연식 감독 최신작 '로마서 8:37'
성경 구절로 묻고 감독이 답하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요한복음 8:47)
‘로마서 8:37’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생전 처음 사랑에 빠지면서야 그는 깨달았다. “어느새 영화가 내게 우상이 돼있었구나.” 우상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야 무언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의 노예일 뿐. C S 루이스의 신앙 소설에 의지했던 어느 날의 기도 중 문득 (하나님의) 그 ‘말씀’을 깨달은 후 세상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공부를 왜 하나. 서울대 가려고? 아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하는 게 공부다.” 그는 영화를 그만둘 각오로 그 성취 대신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단편영화 의뢰가 들어왔고, 2005년 장편영화 ‘좋은 배우’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무진 애쓸 때는 그렇게 안 됐는데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한번에 감독이 됐다.” 신 감독의 말. ‘로마서’의 주인공인 목사 지망생 기섭(이현호)의 운명도 같았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20)
‘로마서 8:37’
처음에는 “죄보다 말씀이 먼저”였다. 신 감독은 5년 전 대형 교회 설립자인 유명 목사의 재단에서 영화 제작을 의뢰 받았다. 그의 목회 철학이 담긴 영화면 어떤 형태든 좋다는 그 제안은 얼마 안 가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말씀을 삶의 순간에 적용하며 사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 컨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은 남았다.
원죄는 기독교 철학의 기본이다. 구원을 이야기하기 전에 죄의 문제를 다뤄야했다. 신약성서에서 죄를 다룬 로마서 6장을 주목한 이유다. 그러나 ‘로마서’가 “이런 작품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자료 조사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한국 기독교 사회는 그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깊고, 짙고, 복잡한 죄에 싸여”있었다. 교회를 둘러싼 법정 분쟁들을 취재하며, 고민은 더해갔다.
‘로마서 8:37’
교회 실세들의 ‘밥그릇’ 싸움과 추악한 성추문을 고발하는 ‘로마서’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불편할 영화다. 이 누가복음 10장 20절은 교회의 위선이 들통 나는 결정적인 계기의 순간 삽입되며 현실과 뜨끔한 대조를 이룬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복을 주리라. (출애굽기 20:24)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복을 주리라. (출애굽기 20:24)
‘로마서 8:37’
‘로마서’의 플롯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이 세상에 최초의 죄가 들어왔고,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 받았다”라는 기독교적 관점을 토대로 했다. 신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악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죄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독립해 세상사를 마음대로 (가치 판단)하고 싶어 한 원죄가 그것이다. 한 공동체 내에 세대와 세대 간에 죄와 구원이 연결돼 있다.”
외도로 얻은 요섭(서동갑)과 현민(김다흰) 형제를 입양아처럼 키워온 아버지 강 장로(최종률). 그의 혼외정사는 원죄의 메타포다. 형 요섭의 죄악을 알고 어릴 적 자신들이 버려진 강가에서 기도하다 불타 숨진 현민은 대속(代贖)의 존재.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그 연약함을 통해 죄가 발현된다”고 생각한 신 감독은 “최대한 선악의 구도를 피하고자” 했다. “나쁜 놈이 진짜 나쁜 건, 너무 나빠서 나도 나쁜 놈이라는 걸 까먹게 만든다는 거야”라던 김 목사(김세동)의 대사처럼, 스스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속인 자들, 그릇된 우상을 숭배하느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시편 115:5~8)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어려운 여정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라. (로마서 8:37)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라. (로마서 8:37)
‘로마서 8:37’
거창한 사명감보다 갈등과 의심 그 자체가 동기 부여가 됐다. 파국으로 치닫는 극의 중심을 지키는 이가 희생적인 영웅도, 파문당한 악인도 아닌 힘없고 갈등하는 평범한 목회자 기섭이 된 까닭이다. 기섭은 가까이 있었으나 미처 몰랐던 성폭행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접하면서 존경해온 목사 요섭이 감춰왔던 진실에 눈뜨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신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기독교적인 방식”을 극 중 기섭과 피해자들의 관계에만 적용하지 않았다. “영혼이 다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요섭의 위선이 구원받길 기도하며 공동체 내 부조리에 무심했던 스스로의 죄 값을 감당하려 하는 극 중 여러 인물들의 모습은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신 감독 자신의 것이기도 할 터.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신을 감싸듯 암전 화면을 밝히는 로마서 8장 37절의 구절은 그런 그의 간절한 기도와도 같이 다가온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