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
라다크엔 전생을 기억하는 특별한 소년 파드마 앙뚜와 할아버지뻘인 스승 우르갼 릭젠이 함께 살고 있다. 앙뚜는 선택받은 린포체(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환생한 티베트 불가의 고승)다. 우르갼은 린포체가 된 앙뚜를 보살피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다. 혈연과 세대를 뛰어넘는, 이 끈끈한 관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에게 듣는 제작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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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요미' 커플을 만나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예순셋의 스님 우르갼과, 스승을 따라 전통의사가 될 다섯 살 제자 앙뚜. 문 감독은 이 특별한 사제 관계에 완전히 반했다. 앙뚜의 귀엽고 해맑은 미소도 좋았지만, 제자를 바라보는 우르갼의 눈빛이 앙뚜 못지않게 아이 같았다. 상대를 향한 저 밝고 빛나는 눈빛은 뭘까. 문 감독은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라다크에 다시 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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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가 된 앙뚜
」'다시 태어나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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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앙뚜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랐다. 사원에선 의젓한 린포체로, 학교에선 눈싸움과 축구를 좋아하는 개구쟁이로 건강하게 컸다. 우르갼 스승과의 관계도 더 깊어졌다. 스승은 제자의 눈높이에서 친구처럼 대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눈싸움을 하다가 손을 잡고 눈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모습, 난로불에 언 손을 녹이며 서로를 쳐다보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이상한 울림을 줬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앙뚜: 스승님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못왔을 거예요.
우르갼: 정말요?
앙뚜: 네, 정말요.
우르갼: 당신을 돕는게 제 삶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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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린포체
」'다시 태어나도 우리'
동네에 루머가 돌았다. 문 감독은 ‘우르갼 스님이 가짜 린포체를 앞세워 외국 사람들에게 뭔가를 팔아먹고 있다’는 소문을 뒤늦게 접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술을 마시고 암자로 갔어요. 암자 앞 바위에 걸터앉아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요. 촬영이 길어지면서 제 주변 사람들을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제가 지금 사랑에 빠진 출연자들마저 힘들게 했다는데 죄책감이 들었어요.”
한참 울다 눈을 떠보니 라다크의 밤 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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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계속된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그 즈음 앙뚜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촬영도 귀찮아했다. 문 감독은 눈싸움으로 앙뚜를 설득했다. 한국팀 대 라다크팀의 한 판 승부. 함께 뛰고 나면 앙뚜는 촬영을 허락해줬다.
한편 우르갼 스승은 앙뚜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앙뚜가 린포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원을 백방으로 알아봤다. 문 감독은 직감했다. 두 사람이 헤어지면, 이 촬영도 일단락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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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친구
」'다시 태어나도 우리'
두 사람은 순례자의 도시 바리나시를 지나 갠지스 강을 건너 티베트 국경까지 3000㎞를 움직였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열두 살이 된 앙뚜는 어느덧 일흔의 스승을 챙기고 있었다.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 감독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된 것 같냐고.
'다시 태어나도 우리'
언제부터인가 우르갼은 앙뚜라는 존재에 기대고 있었어요. 함께 있어서 고마운 존재가 된 거죠. 그래서 앙뚜와 헤어질 때 ‘고마웠다’고 말한 것 같아요.
앙뚜에게 우르갼 스승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준 하늘같은 존재에요. 그런데 앙뚜도 변했죠. 앙뚜는 이제 늙고 병든 스승을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보라치는 설산을 올라갈 때 앙뚜가 ‘손 주세요’라며 스승을 끌어 올려주거든요. 정말 놀랐어요. 어쩌면 티베트에 있는 사원보다 우르갼이란 존재가 앙뚜에게는 훨씬 더 큰 존재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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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남은 것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전진 감독
“저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 제 스스로를 혹사하는 편이었어요. 주변 사람도 잘 못챙겼고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내 옆에 있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한테 잘해야겠구나 깨달았어요.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맺히더라고요.
최근에 일 때문에 촬영본을 다시 봤어요. 라다크의 냄새와 고산병의 감각이 밀려오더라고요. 서너 시간을 멍하게 앉아있었는데, 그 기억이 제게는 무척 강하게 박힌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정말 보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은?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706)
'다시 태어나도 우리' 촬영 이모저모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가편집본 30개
라다크에 간 횟수 10회
한 번 가면 촬영 기간 2~3개월
촬영 카메라 2대+드론 카메라
촬영 스태프 3명 (문창용 감독, 전진 공동감독 겸 프로듀서, 현지 가이드)
어떻게 찍었나? 인물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찍었다. 시간이 가장 좋은 디렉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