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잃어버린 도시 Z’(원제 The Lost City Of Z, 9월 21일 개봉)는 동명 논픽션을 원작 삼아 포셋의 일대기를 그린다. 무엇이 그를 ‘푸른 사막’‘악마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던 아마존으로 이끌었을까. 칸국제영화제가 사랑한 미국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그의 지독한 열정을 어떻게 스크린에 담았을까.
20세기 탐험가 퍼시 포셋 일대기 그린
'잃어버린 도시 Z' 매거진M 커버 스토리
아마존에 인생을 바친 남자
1910년 즈음 자료 조사를 하던 그는 아마존에 고대 문명이 존재했을 거라며, 이를 잃어버린 도시 Z라고 명명했다. 이 주장은 영국 과학계의 조롱을 샀지만 포셋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존엔 인류 역사상 가장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다른 탐험가에 뒤쳐질 수 없다는 인정욕구. 이것이 그를 오지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으로 인해 잠시 발길을 멈춰야 했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범한 인간이었다. 정신력뿐 아니라 탐험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춘 인재. 원작에서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불같은 성격과 대쪽 같은 성품, 동물에 가까운 감각이야 말로 그를 가까이하기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밀림 속에서 거의 아파본 적이 없었다. 흔하디흔한 열병 따위도 앓지 않았다.”
여기에 포셋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신화적 인물로 만들었다. 후대의 여러 탐험가가 그의 흔적을 찾아 아마존으로 떠났고, 문학과 영화엔 그를 모델로 한 인물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이 1912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세계』(행복한책읽기)의 챌린저 교수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의 주인공 존스(해리슨 포드) 역시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이 많다. 포셋이 아마존에 매혹된 것처럼, 수많은 탐험가와 작가가 그에게 매료됐다고 할까.
원작 VS 영화, 처절한 밀림 아닌 인간 포셋을 그린 영화
가장 눈에 띄는 건 집요한 취재와 방대한 자료에 입각한 생생하고 객관적인 서술이다. 포셋이 탐험을 위해 준비한 기구부터 학습한 내용들, 함께 했던 동료, 위기의 순간에서 나타난 그의 모질고 냉정한 태도까지 상세하게 드러난다. 압권은 역시 아마존에 관한 묘사. 흡혈 물고기 피라냐와 전기뱀장어, 숲속에서 튀어나오는 멧돼지, 하룻밤 사이에 옷과 가방을 모조리 뜯어놓는 흰개미 등 읽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설명이 이어진다.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이다. 소설에는 작가 개인의 경험담과 포셋에 관한 3인칭 소설이 번갈아 등장한다. 만약 이를 그대로 영화화 했다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이 들어맞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포셋(찰리 허냄)의 삶에 집중한 시대극으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주 우아하게. 사실 영화는 원작이 자세히 그린 긴박하고 처절한 아마존 탐험에 방점을 찍고 있진 않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어드벤처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레이 감독은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플랜B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출 제의를 받았다. “책이 출간되기 전인 2008년에 원고를 받았는데, 피트가 이걸 내게 왜 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 이전 작품과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쳐 이상을 추구한 인간이라는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레이 감독의 말이다. 그로부터 제작까지 6년이 걸렸다. 주연은 일정 문제로 브래드 피트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바뀌었다가 결국 찰리 허냄에게 돌아갔다.
포셋과 대원이 아마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는 대목 역시 극적인 장치로 박진감을 더하지 않는다. 한 대원이 토혈을 하는 모습, 모기에 물려 다리에 검붉은 상흔을 입는 모습 등 묘사가 사실적이지만 자극적이진 않다. 몇몇 장면에선 밀림의 풍경이 끔찍하기 보단 아름다워 보일 정도다.
아마존에선 생존의 갈림길에서 뒤처지는 대원과 대립하고, 영국에선 상류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열등감을 느끼는 포셋의 삶. 그레이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 상류층은 포셋을 업신여겼고, 원주민을 경멸했다. 인간의 무리가 품고 있는 슬픈 진실. 인간은 서로를 계급과 종족, 성별이라는 상자에 집어넣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그가 부딪친 1900년대 상황은 복잡했다. 계급적 위계질서는 강력했고, 아프리카인은 유럽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영국인이 생각하는 오지 탐험의 목적은 지도 제작과 고무나무 등 돈벌이와 정복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잃어버린 도시 Z’는 당시 백인이 지녔던 인종차별적 시각을 꼬집는다. “이 이야기는 인종차별 문제를 반성적인 태도로 다룬다고 봤다. 당시 유럽인이 질병을 옮기는 등 남미 원주민 지역을 크게 훼손한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이를 보여주려 했다.” 그레이 감독의 말이다.
콜롬비아 밀림에서 35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와 제작기 자료엔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말도 못할 고생담이 빼곡히 담겨 있다. 2015년 8월 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촬영은 두 달 뒤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의 열대우림으로 이어졌다.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있었지만, 거칠고 극악한 자연은 진짜 밀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작진은 6주 동안 이곳에서 안전하게 촬영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온갖 병균을 옮기는 모기, 수시로 제작진을 위협하는 독사, 예상치 못한 홍수까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
주연 배우 조차 밀림의 위협을 피할 순 없었다. “새벽에 드릴로 바위를 뚫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고 보니 귓속에 들어간 벌레가 고막을 때리는 소리였다. 귀에 물을 뿌리자 조용해졌지만, 다음 날까지 벌레가 산채로 귓속에서 꼼지락거렸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야 괜찮아졌다.” 찰리 허냄의 말이다.
“그날 찍은 필름을 너덜너덜한 상자에 넣어 살충제를 살포하는 비행기에 실어 보냈다. 필름은 두어 대의 비행기를 갈아타고서야 영국의 스튜디오로 배송됐다. 다음 날 아침 위성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운 마음으로 받았다. ‘필름을 잃어버렸다는 얘긴 아니어야 할 텐데’ 하면서.” 사투에 가까운 노력으로 필름에 담은 밀림의 풍광은 ‘잃어버린 도시 Z’가 이루어낸 중요한 미학적 성취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