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송진 채취 흉터안고 꿋꿋한 춘양목

중앙일보

입력 2017.08.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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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봉화군 비룡산(해발 1120m) 8부 능선. 가시덤불을 헤쳐가며 다다른 소나무 군락지. 말로만 듣던 춘양목(봉화 지역의 소나무)들이 붉은 갑옷을 껴입은 채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게 서 있다.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경북 봉화 비룡산 춘양목이 상처를 안고도 당당하게 서있다.

산을 오르느라 거칠어졌던 숨을 고르고 나서야 괴기스러운 ‘V’자 형태의 칼자국이 눈에 띈다. 아름드리 소나무마다 촘촘하게 그어댄 하사관 계급장을 연상시키는 두세 뼘 크기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동행한 봉화 주민 권오문씨는 “예로부터 춘양목으로 유명한 이 일대에는 일제가 남긴 아픈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소나무들이 즐비하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사람, 역사, 문화뿐만 아니라 소나무에까지 칼을 들이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일제는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촘촘하게 칼집을 내 송진을 채취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수탈에 혈안이 된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도 모자라 소나무까지 눈독을 들였다. 송진에서 기름 채취가 가능한 사실을 알고 조선 전역의 질 좋은 소나무를 칼질해 전쟁물자로 사용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이민주 연구원은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1943년 한해에만 전국에서 4000t의 송진을 채취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춘양목으로 불리는 봉화지역의 소나무는 다른 소나무에 비해 더 강하다.

지워지지 않는 흉한 문신을 안고도 쓰러지지 않고 이 땅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이 광복 72주년을 맞는 오늘도 일제의 만행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간직하고 보존해야 할 것은 값비싸고 아름다운 소나무만이 아니라, 민족의 아픈 역사를 온몸에 새긴 바로 이 소나무들 아닐까.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