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 중장년층 움직인 낭만 마케팅
아름다운 시나리오와 에단 호크
국내 수입·배급사 오드(AUD) 김시내 대표가 ‘내 사랑’을 처음 만난 건 2014년 말. 불과 시나리오 단계였다. 주인공인 캐나다 민속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는 낯선 인물이었지만, 여성 예술가의 실제 러브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렸다는 점, 모드의 밝고 따뜻한 화풍에 마음이 기울었다. BBC 퀴어 멜로시리즈 ‘핑거스미스’(2005)에서 빼어난 호흡을 선보인 에이슬링 월쉬 감독, 배우 샐리 홉킨스의 참여가 신뢰를 더했다.
문제는, 미완성 영화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웠던 가격.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남자 주인공 역에 에단 호크가 떠올랐다”는 그는 아쉬운 마음에 “만에 하나 호크가 캐스팅된다면 계약하겠다”며 물러났다. 2015년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이 영화의 계약서에 사인하게 된다. 물망에 올랐던 숀 빈이 하차하고, 호크가 주연을 확정한 것. 이후 호크가 직접 보낸 ‘내 사랑’ 한국 개봉 축하 영상은 SNS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내 사랑'
실화보다 낭만에 주력
‘내 사랑’의 원제는 모드 루이스의 애칭 ‘모디(Maudie)’다. 모드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한국에선 영화를 보기 전엔 얼른 와닿지 않는 제목이었다. 바뀐 개봉명(내 사랑)에 맞춰, 마케팅 방향도 ‘낭만’으로 잡았다. 모드의 굴곡진 삶에 초점 맞춘 해외 포스터·예고편은,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의 ‘인생 멜로’에 무게를 실어 전면 수정했다. 모드의 그림과 극중 목가적인 시골 풍경을 적극 활용했다.
통상 예술영화는 개봉 2개월 전 마케팅을 시작하지만, ‘내 사랑’은 시간이 더 걸리는 영화라고 판단했다. 개봉 3개월 전인 4월 29일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알리며 첫 홍보에 나섰고, 이후 CGV아트하우스 ‘스크린 문학전’ 등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 나갔다.
영화 속 작은 집 복원 전시. / 사진=오드
아날로그 마케팅에 중장년층 호응
개봉을 한 달 앞둔 6월 세종문화회관 뒤뜰, 대한극장 루프탑 등에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야외 시사회부터 차츰 반응이 무르익었다. 객석에서 기립 박수까지 터져 나왔다. 모드 그림 네일아트 등 기존 영화에서 보지 못한 굿즈도 이목을 끌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모드 부부가 살던 작은 집을 절반 크기로 제작한 여의도 복원 전시. 다른 지역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인증샷’ 명소가 됐다.
아날로그한 접근법이 통한 걸까.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멜로영화로는 이례적으로 50대 이상 관객 비율이 전체 관객의 20%를 넘어섰다. 한 관객은 “엄마가 살면서 스스로 극장에서 제일 많이 보신 영화”라며 ‘내 사랑’ 영화 티켓 다섯 장을 인증했다. 보통 관람 열기가 떨어지는 개봉 3주차(7월 29일) 역대 최고 좌석점유율(45.4%)을 기록한 데에는 이처럼 폭 넓은 관객층의 재관람이 뒷받침됐다.
틈새 취향 공략하고 불법 파일 정면 돌파
‘내 사랑’은 액션·호러·스릴러 대작이 격돌하는 여름 시장에서 정통 멜로로 틈새 관객을 노렸다. 7월 10일 이벤트 예매 오픈을 알릴 때는 아예 “블록버스터에 지친 관객들을 달래 줄 힐링 영화”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또 IMDB에 따르면, 각종 영화제를 제외하고 ‘내 사랑’을 전국적인 규모로 정식 개봉한 건 스페인(6월 23일) 다음으로 한국이 두 번째다. 캐나다·미국은 각각 지난 4·6월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개봉했다. 예술영화는 해외 반응을 살피고 국내 개봉하는 게 일반적. 그러나 해외에서 유입된 불법 파일 피해가 만만찮다. ‘내 사랑’은 개봉을 최대한 서둘러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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