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우며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을 약속했다. 지난달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선 “신고리 5, 6호기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속전속결’로 움직였다. 같은 달 27일 국무조정실이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조사로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4일 오전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사회를 기습 개최해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의 선언 후 25일 만이다.
문 대통령 공약대로 탈원전 선언에
정부, 25일 만에 서둘러 중단 결정
한수원 이사 13명 중 1명만 반대
업계 “안전문제 있을 때만 중단해야”
산업부 “에너지법상 문제 없어”
문제는 건설 중인 원전의 중단 여부를 공론조사로 결정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무조정실이 참조하겠다는 건 독일의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선정을 위한 ‘시민소통위원회’와 일본의 2012년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다.
두 사례는 결정되지 않은 정책 방향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물었다. 적법하게 착공해 28.8%나 공사를 진행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는 의제나 시급성에서 차이가 크다. 3개월의 공론조사로 국민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론조사 결과는 헷갈리기만 하다. 한국갤럽의 14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에 대해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41%로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37%)보다 많았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을 찬성한다는 응답은 59%, 반대한다는 답변은 32%였다.
3개월 내 국민 합의 도출 어렵다는 우려도
원자력 학계와 한수원 노조, 지역주민들로 이뤄진 건설 중단 반대파와 환경운동가 중심의 찬성파 간의 갈등도 크다. 공론화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려도 양측에서 승복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일각에선 20개월의 활동으로 권고안을 만들었지만 국회에서 외면받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공론조사는 해외처럼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해 해야 한다”며 “사업이 진행 중인 신고리 5, 6호기는 이해관계가 복잡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완전 중단되면 건설 도중에 멈추는 국내 첫 원전이 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원전 건설 중단의 경험이 있는 나라는 대만과 미국, 필리핀 정도다. 김창락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만을 제외하면 원전 건설 중단 사례는 1970~80년대에나 있었고 대부분 최근 들어 공사 재개나 재개 검토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