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까지 회의가 진행됐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회의가 열린 장소다. 한수원 이사회는 이날 오전 8시30분 회의를 열고 기습적으로 공사 중단을 통과시켰다.
이날 이사회가 기습적으로 열린 것은 전날인 13일 한수원 본사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회의가 무산되면서다. 당시 한수원 이사회 비상임위원들은 건물 입구를 봉쇄한 한수원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막혀 돌아서야 했다.
이사회 무산 하루 뒤 호텔서 기습 이사회
신고리 원전 5, 6호기 3개월간 공사 중단
회의 열렸던 호텔 회의실은 이미 문 잠겨
노조는 "이사진 퇴진 운동하겠다" 강력반발
노조는 15일 공사 현장서 긴급비상대책위 개최
현장에 달려갔던 한 노조원은 "노조원 20여 명이 이사회 회의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회의가 끝나고 이사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노조원들이 항의하자 이사들은 줄행랑치듯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회의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봐 회의장 창문을 종이로 가리고 숨어서 회의를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수원에 따르면 이날 회의엔 이사 13명(상임이사 6명+비상임이사 7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 중 12명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에 찬성했다. 반대표를 던진 것은 비상임이사 1명뿐이었다.
한수원 측은 이사회 회의가 끝난 뒤 20여 분이 지난 오전 10시50분 보도자료를 통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의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습 이사회가 끝난 후 한수원 노조는 긴급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김병기 한수원 중앙노조위원장은 "기습 이사회 개최는 과거 독재 정권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것인데 현 정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이사들의 퇴진운동 벌일 계획이는 한편 내일(15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현장에서 노조 긴급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법률검토를 통해 이사회 무효 가처분 신청이나 이사회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필요에 따라 배임이나 손해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가 일시 중단되면서 3개월 동안 약 1000억원의 손실이 생길 전망이다. 한수원이 기자재 보관 비용, 건설 현장 유지·관리, 공사 관련업체 피해 등을 종합한 결과 이 같은 손실이 생길 것으로 분석되면서다.
경주=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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