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해에 출간한 『파워플레이: 미국 아시아 동맹체제의 기원(Powerplay: The Origins of the American Alliance System in Asia)』 또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큰 도움이 됐다. 예컨대 한번은 냉전 초기 미국-아시아 관계를 다루는 수업에서 옷차림이 단정치 못한 어느 학생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 왜 미국은 유럽에서 다자주의적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결성한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양자 동맹관계를 선택했습니까.” 이 질문은 나로 하여금 『파워플레이』의 집필을 자극했다.
북한의 잔혹성은 이미 아는 사실
웜비어는 북한의 무능력 드러내
‘전략적 인내’ 대신한 트럼프의
공세적 협상이 그를 귀환시켰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신으로 버지니아대에 다니던 오토 웜비어가 관광객으로서 북한을 방문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체험적 학습과 실험을 향한 젊은이 특유의 생동감에서 나온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가 북한에 간 이유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체제 전복’을 위해서거나 일부러 북한 당국을 기분 상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토 웜비어는 지난 리우데자네이루 여름 올림픽에서 발생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 대표 수영선수들이 밤중에 도시를 배회하다가 한 주유소에 들러 기물을 파손했다. 웜비어와 마찬가지로 미국 올림픽 수영팀 선수들은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당국 앞에 서야 했다. 하지만 수영선수들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메달을 땄기 때문에 그들의 비행에 대한 처분은 신속하게 결정됐다.
웜비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 오하이오 태생의 젊은이였을 뿐이다. 그는 북한 당국의 손에 고초를 겪었다. 그는 미국 공중의 이목을 끌지도 못했다. 분노한 웜비어의 아버지에 따르면 ‘전략적 인내’ 정책을 구사하는 미국 행정부에 아들 웜비어는 우선순위 과제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 북한 정권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밝힌 것처럼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다. 오토 웜비어의 사례는 북한이 그런 나라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하지만 웜비어의 고초로 부각된 것은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무능이다. 오토 웜비어의 신체에 이상이 생기자 북한 정권은 이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북한은 의식을 잃은 웜비어를 치료할 능력이 없었다. 자체 능력이 없으면 이 젊은이를 치료하기 위해 쇄국 정책에서 벗어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결정을 할 능력이 없었다.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 혹은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 나라는 한 젊은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조용히’ 도움을 줬을 것이다.
웜비어의 상태가 회생 불가능하게 된 다음에도 북한 당국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15개월 이상 사태를 질질 끌었다. 응당 인도주의 차원에서 그를 식구들에게 돌려보냈어야 했다. 아무리 강경한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혼수 상태에 빠진 미국 대학생을 프로파간다 목적에 사용할 명분도 실익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무능력한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웜비어를 풀어주게 만든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인 협상이었다.
북한은 극도로 비인간적인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도 평양을 비난해야 한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여행 권고 지침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웜비어 사례는 미국으로 하여금 미국 시민의 북한 방문을 전면 금지하게 만들 수 있다.
오토 웜비어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더 이상 젊은 호기심을 마음껏 풀기 위해 세계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없다. 그는 교수들에게 연구과제를 던져주는 질문도 더 이상 할 수 없다. 오토 웜비어가 남긴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