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갈수록 커지는 영향력, 댓글의 사회학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지난 3일 청소년 기자 5명 등 중고생 8명을 심층 인터뷰해 ‘가짜 뉴스와 청소년 : 청소년은 뉴스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청소년들은 SNS(페이스북)로 주로 뉴스를 접하며 기사를 읽기 전 댓글을 먼저 확인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기사를 본다’고 밝혔다. 또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은 ‘베스트 댓글’을 뉴스 판단에 있어 가장 신뢰할 만한 근거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조사 대상 청소년들이 댓글을 쓴 사람의 의견과 기자의 의견에 거의 동등한 가치를 두고 있었다”며 “이는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지만 (댓글을 쓴) 개인을 정보의 생산 주체이자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반시민의 글이라는 믿음 크지만
이해 당사자들의 댓글 쓰기도 확산
청소년 “댓글 보고 뉴스 본다”
여론 호도·조작 댓글은 큰 문제
돈 받고 댓글 조작하는 사이트도
뉴스 이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요
*댓글 영향력 실험에 쓰인 MBN 온라인 기사
댓글 여론을 현실 여론으로 여겨
문제는 댓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도 영향은 받는다는 점이다. 이은주 교수 연구에 따르면 댓글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본인 의견과 네티즌 의견이 다르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댓글에 노출될 경우 댓글에 부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받는 영향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수용자들은 논쟁적인 이슈를 다룬 기사의 경우 댓글과 같은 방향으로 기사 논조가 편향되었다고 생각하며 욕설이나 인신공격 등을 담은 댓글이 달린 경우 그렇지 않은 기사에 비해 기사 자체의 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수용자들이 기사와 댓글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댓글의 영향력이 큰 만큼 우려도 크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댓글은 더 자극적이고 직설적이어서 재미가 있다. 청소년들이 동류의식을 느끼게 하는 내용과 친숙한 글쓰기 표현방식에 신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래집단 판단에 의해 기사 가치를 판단하면 왜곡된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가짜뉴스에 오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대선 정국에서 댓글은 논거를 통한 토론과 설득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매체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자기 확증을 강화해 사회를 양극화하는 역할이 더 컸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독선으로 치우쳐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댓글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5월 미국 폭스뉴스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큰딸의 하버드대학 입학허가 기사가 뜨자 인종차별적 댓글이 쏟아져 댓글 섹션이 폐쇄됐다. 온라인 어뷰징, 증오 표현, 트롤링(Trolling, 화를 내도록 도발하는 행위)도 증가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문화연구를 하는 류동협 박사는 “전 세계 기자의 65%가 트롤링을 당했다는 조사가 있으며 남중국해 문제 때 중국 트롤(트롤링 행위자)이 필리핀 신문에, 우크라이나 분쟁 시 러시아 트롤이 독일 신문에 몰려가 댓글 운영을 접게 했다”고 지적했다.
ESPN, 신원 공개된 페북 댓글만 허용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댓글 실명제를 시행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은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지적이 주류다. 류동협 박사는 “악성 댓글은 큰 문제이지만 댓글을 없앤다고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공론장을 파괴하면서 다수의 의견만 강화하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주 교수는 “댓글난이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일상에서는 숨겨져 있는 목소리들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을 허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여전히 기생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과 왜곡된 현실 인식의 실체를 직면하는 자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공간을 통해 자정 작용을 장려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뉴욕타임스는 댓글 우수 이용자를 선정하고 좋은 댓글은 홈페이지 중앙에 배치하는 방법을 통해 수준 높고 풍부한 토론이 이뤄지게 했다. 뉴욕타임스 댓글은 기사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신문은 어떤 댓글을 권장하고 어떤 댓글을 지우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공시하고 있다. 특히 소수 의견이 다수에 의해 무시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반면 편집자가 댓글을 삭제하는 행위가 일종의 검열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댓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여론을 호도하는 조작이다. 한국에서는 유난히 조작이 많다. 대기업 홍보팀장 C씨는 “회사에 대한 기사에 부정적인 댓글이 나오면 직원들이 우호적인 댓글들을 달고 이에 대해 동감을 눌러 부정적인 댓글들을 뒤로 밀어낸다. 이런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같은 이익집단이 기업에 대해 압력을 가하기 위해 댓글부대를 조직하기도 한다. 댓글을 써주는 SNS 마케팅 회사들과 광고대행사라는 푯말을 내걸고 댓글알바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다단계 성격의 사이트들도 성행한다. JTBC 뉴스룸은 최근 “댓글 조작 사이트가 신상 정보를 생성하는 불법 프로그램으로 만든 수많은 아이디를 동원하고 개당 50원에 뉴스 댓글도 조작한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의 댓글 조작 등 정치권력의 댓글 개입은 더 큰 문제다. 대선 기간 중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민주당 당직자들과 팬클럽이 2012년 대선 때 국정원 댓글 부대 같은 여론 조작을 한 정황 증거들이 나왔다”고 했다. 민주당도 국민의당이 댓글 조작을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댓글 조작은 공론장 기능 오염시켜
한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자사 관련 뉴스에 댓글 달기를 독려하는 카톡 내용.
전문가들은 조작된 댓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수용자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댓글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익명이 보장되고 전적으로 참여자의 선의와 자율규제에 의존하는 댓글 공간은 여전히 난제(難題)란 지적이다. 류동협 박사는 “댓글의 기본 속성 자체가 이해가 충돌하며 토론과 공론장의 기능을 하는 것인데 통합을 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은주 교수도 “(악플이 달릴 수도 있으니) 이 기사 댓글은 읽지 않을 예정입니다^^”고 했다.
성호준 기자, 정서영 인턴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