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더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그후’는 내연 관계에 휘말린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과 세 여성의 해프닝을 그린 92분여 흑백영화다. 봉완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책임지려 들지는 않는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그후’는 끝까지 봐야 하는 영화다. 이 모든 사태의 그 후, 봉완이 누군가와 재회해 촌철살인의 부조리극을 빚는 엔딩 시퀀스는 영화 전체에 한결 선명한 인상을 불어넣는다. “사는 게 다 그렇다”는 탄식이 절로 난다.
봉완이 자신의 출판사에서 일하는 내연녀 창숙(김새벽)에게 홍상수 감독 특유의 “예쁘다” “아름답다” 같은 대사를 남발하거나, 봉완의 외도 상대를 오해한 아내 해주(조윤희)가 엉뚱한 직원 아름(김민희)을 구타하는 등 장면에선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이 홍상수 감독을 향해 환한 미소로 박수 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스윈튼은 ‘그후’와 올해 나란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주연을 맡았다. 공식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심사위원 윌 스미스, 제시카 차스테인 등도 이날 참석했다.
수상 가능성의 척도로 알려진 기립박수는 4분여 이어졌다. 앞서 상영된 ‘옥자’도 4분이었다.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이끌어낸 10분여 기립박수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영화에 대한 현지 평가는 다소 미온적이다. “홍상수 영화의 정수가 잘 살아났다”(할리우드리포터)는 호평과 “어떤 경지를 엿보기는 힘들다”(버라이어티)는 아쉬움이 공존한다.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를 발간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아가씨’로 칸을 찾은 김민희는 단연 눈에 띄지만, 홍상수 영화를 오래 봐온 예민한 관객에겐 이번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고 두서없게 느껴질 것”이라고 평했다. ‘옥자’에 별 다섯 개 만점을 줬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후’에 별 셋을 부여했다.
반면, 40여 명의 평론가가 참여하는 스페인 영화 사이트 ‘투다스 라스 크리티카스’에서 ‘그후’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7.69점으로 24일 현재까지 상영된 공식 경쟁 진출작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미국 엔터테인먼트 매체 ‘베니티페어’가 강조하듯 홍상수 감독처럼 칸영화제에 한 해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감독은 극히 지극히 이례적이다. 홍상수 감독이 칸영화제를 찾은 건 1998년 ‘강원도의 힘’ 이후 올해가 아홉 번째. 2010년 제63회 영화제에서 ‘하하하’로 주목할만한시선 대상을 탔지만, 경쟁 부문에는 2011년 ‘다른나라에서’까지 후보로만 세 번 올랐을 뿐 수상은 번번이 불발됐다. 지난 2월 홍상수 감독은 김민희와 함께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여우주연상(김민희)을 거머쥔 바. 6년 만에 공식 초청된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희소식이 들릴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나온다. ‘그후’ 공식 상영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가 정말 좋아서,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편, 중반으로 접어든 70주년 칸영화제에서는 공식 경쟁 진출작 19편 중 11편이 공개됐다. 미카엘 하네케, 토드 헤인즈 같은 거장과 젊은 감독들의 개성 강한 장르 영화가 다채롭게 어우러졌다는 평가지만, 아직 압도적으로 지지 받는 걸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 세계 11개 매체가 참여하는 ‘스크린 데일리’ 평점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작품은 4점 만점에 3.2점을 기록한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러브리스’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갑자기 사라진 열두 살 박이 아들을 찾아 나선 이야기다. ‘르 필름 프랑세즈’ 평점에서는 국제적인 에이즈 운동 단체 액트업(ACT UP)의 실화를 다룬 프랑스 감독 로빈 캉필로의 ‘120 비츠 퍼 미닛’이 2.93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칸(프랑스)=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