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23일 열린 1차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변호사는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엄격한 증명에 따라 기소된 게 아니라 추론과 상상에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측 1심 전략은
“검찰 논리면 돈봉투 만찬도 수뢰”
매일 재판 요구엔 “주 3회만” 제동
구속만기일 넘기면 석방돼 재판
박 전 대통령 측은 재판 속도도 문제 삼았다.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이 “공소사실이 많은데 모든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쟁점도 다양하다”며 “가능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은 지난해 10월부터 수사를 해 기록 파악이 끝난 상태이지만 변호인은 12만 쪽이 넘는 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 접견과 재판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니 6~7월까지는 최대 세 차례씩만 재판을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재판 진행에 제동을 걸면서 사건 관련자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됐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삼성 뇌물 혐의와 관련해 제출한 153명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 진술조서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검찰은 진술자를 증인으로 불러 직접 신문해야 한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될 수 있다.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방기선 전 청와대 행정관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방 전 행정관은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문화·체육재단 설립 기획서를 작성했다고 한다”며 재단 설립 지시 혐의를 부인했다. 또 “청와대 기밀문건 유출 혐의도 (정 전 비서관에게) 연설문 표현에 대한 의견을 최씨로부터 들으라고 한 적은 있지만 정부 인사 관련 문서 등을 유출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책임을 돌렸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 출석했던 포스코 권오준 회장, KT 황창규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다시 재판에 나와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만기일(10월 16일) 전까지 결론을 낼 계획이지만 증인 출석 일정 등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많다.
박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피고인들의 선고 시기도 영향을 받게 된다. 앞서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과 차씨 등의 결심을 미루면서 “공범 중 한 명에 대해서만 먼저 결과를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행법상 1심 구속 시한이 6개월이어서 장시호씨 등 구속 기한 만료를 앞둔 피고인들은 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김선미·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