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공효진(36)은 꽤 온도 차가 심한 캐릭터들을 오갔다. 지난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TV 드라마 ‘질투의 화신’(2016, SBS)에서 씩씩한 기상캐스터 표나리를 연기하며 ‘공블리’라는 애칭처럼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고령화 가족’(2013, 송해성 감독) 이후 3년 만에 복귀한 스크린에서는 ‘미씽: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의 이주 여성 한매 역을 맡아 서늘한 연기를 선보였다. ‘싱글라이더’ 개봉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반려견 ‘미미’와 함께 스튜디오에 온 공효진은 신중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놨다.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길 때는, 영화 촬영 후 오랫동안 얼얼하게 남아 있던 감정의 정체를 되짚는 듯했다. 인터뷰하기 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에 임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반려견 ‘미미’와 함께 스튜디오에 온 공효진은 신중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놨다.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길 때는, 영화 촬영 후 오랫동안 얼얼하게 남아 있던 감정의 정체를 되짚는 듯했다. 인터뷰하기 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에 임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진=전소윤(STDUIO 706)
극 중에서 공효진은 재훈의 아내 수진 역을 맡았다. 아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남편을 한국에 두고 호주로 건너온 주부 역할이다. 회사 일로 괴로워하던 재훈은 수진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불쑥 호주로 향한다. 하지만 재훈의 눈에 비친 수진은 그 어느 때보다 멀고 낯선 존재다. “지금껏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은 손에 꼽을 만큼 특이한 인물이었어요. 반면 수진은 무척 평범하고 현실적인 여성이자 주부예요. 오히려 그 점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는 수진의 역할이 “명확하다”고 느꼈다. “수진은 재훈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만 등장해요. 그렇다 보니 연기하기에도 답답하고, 관객에게도 오해를 살 수 있는 캐릭터예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 중 재훈의 감정을 클라이맥스까지 휘몰아치게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죠.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생각보다 ‘이 영화의 드라마를 떠받치는 일부가 된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어요.”
사진=전소윤(STDUIO 706)
“바이올린이 참…, 나빴어요(웃음). 악기 특성상 바이올린 연주는 얼굴과 손을 한 장면에 담아야 하잖아요. 연주는커녕 손가락 모양을 흉내 내기도 힘들더라고요. ‘끼익끼익’ 소리를 들으며 연기에 몰입해야 했던 (이)병헌 선배는 아마 더 힘들었겠죠(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이병헌에 대한 인상도 들려줬다. “연기의 기술적·감성적 측면 모두를 탁월하게 표현하기에, 남녀를 불문하고 배우라면 누구나 함께 연기하고 싶어할” 이병헌은, 공효진이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고. “평소 병헌 선배의 연기를 보며 ‘빈틈없는 완벽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몹시 친근하고 여유롭게 촬영 현장에 녹아들더라고요. 아쉽게도 ‘싱글라이더’에서는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병헌 선배의 연기를 곁에서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었죠. 이번 영화는 워밍업으로 여기고, 다음에 치열하게 연기할 기회를 노려 볼까 해요.”
“예전에는 ‘결국 연기는 캐릭터 싸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보니 역할 자체를 칼과 방패 같은 무기로 여겼던 것 같아요. 내 캐릭터의 특징이나 매력을 내세우기에 바빴죠. 하지만 2014년 연극 ‘리타 길들이기’를 준비하며 연기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중요한 건, 내가 맡은 인물을 ‘최첨단 무기’처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전체적인 큰 그림 안에서 전략적으로 내 캐릭터를 조율하는 ‘병법’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됐어요. 물론 언젠가 이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작품이 내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극에 조화롭게 섞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공효진은 “지금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고민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재충전의 시간. ‘공블리’ ‘패셔니스타’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이미 여럿이지만, ‘배우 공효진’을 자극할 다음 도전은 무엇이 될까. 그가 시원스레 말한다.
“지금까지의 연기를 돌아보면, 그건 ‘(배우로서의) 선택’이라기보다 ‘갈증 해소법’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연기를 통해 내가 맡고 싶은 역할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해 왔으니까. 그런 면에서 배우만큼 좋은 직업도 없죠. 다만 한 가지 목표는 있어요. 관객들이 공효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한지 더 알고 싶어요.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흡수하는, 굳어지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비유하자면, 뛰어난 유연성을 가진 ‘스트레칭 잘하는 배우’(웃음).”
글=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