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끄는 은행 대여금고
지역 온라인 재테크 카페 회원인 주부 이모(38)씨는 ‘금(金)테크족’이다. 예금 금리가 낮고 투자상품을 알아볼 자신이 없어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금을 사 모은다. 문제는 보관이다. 장롱 속에 그냥 두자니 늘 불안했다. 집 안에 금고를 들이려 알아봤지만 부피와 무게가 부담이 됐다. 하지만 은행이 금고를 빌려준다는 걸 알고 난 뒤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해부터 주거래은행에 대여금고를 신청해 사용 중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잠깐 동네 외출을 할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문까지 다 잠그느라 불편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수수료로 걱정을 덜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연 수수료 1만~5만원 생각보다 적어
우리·하나·농협·SC는 보증금만 받아
거래 실적·예금 많으면 이용료 면제
비밀 보장되고 수시로 확인 가능
이용 문의, 고객 수요 매년 늘어나
1년마다 계약 갱신, 자리 나와야 배정
이 중 3년 치 통계를 갖고 있는 4대 은행(신한, KB국민, 우리, KEB하나)의 대여금고 숫자는 2014년 말 44만9116개, 2015년 말 46만7066개, 2016년 말 45만8659개로 나타났다. 지난해 외환·하나은행이 합치면서 지점을 대거 통폐합해 증가세가 잠시 꺾였지만 신청자가 변함없이 늘고 있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대여금고 이용 문의 및 고객 수요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가사·육아 도우미 등 외부인 출입이 잦아지는 생활상도 금고 인기몰이의 한 배경이다. 지역별 육아·살림 인터넷 카페에는 인근 은행 지점에서 대여금고를 받는 조건이나 비용 등을 묻는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금덩어리나 억대의 시계·보석이 아니더라도 결혼 예물과 현금 등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욕망이 금고 대중화를 이끈 것이다.
안타깝게도 은행 지점의 대여금고는 벌써 대부분 주인이 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대여금고 배정은 복불복인 측면이 있다. 1년마다 계약이 갱신돼 빈자리가 나오는데 금고별로 갱신 날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지점에서 오래 거래하면서 단골이 된다면 금고 배정 시기를 조금은 앞당길 수 있다.
[S BOX] 전두환 친인척 금고엔 통장 50개, 최유정 변호사 금고엔 7억 뭉칫돈
대여금고는 대형 사건의 단골손님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롯데그룹 비자금 사건에서도, 전직 대통령 재산 환수 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씨는 KEB하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 있는 대여금고를 썼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 대여금고를 압수수색했다. 앞서 SC제일은행·KB국민은행 등 최씨가 거래한 시중은행 네 곳을 압수수색했는데도 개인 금융거래 내역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고 안에는 보석류와 일부 서류가 들어 있었다. 장시호씨도 같은 지점에서 대여금고를 썼다. 이 대여금고에서도 현금이나 통장 대신 옥반지와 팔찌 등 금붙이가 몇 점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때는 시중은행 대여금고 7곳이 무더기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전 전 대통령 본인과 부인 이순자씨 명의가 아닌 동생 이창석씨 등 친인척 명의의 금고였다. 안에서는 예금통장 50여 개와 금 등 귀금속 40여 점이 발견됐다. 현금이나 무기명 채권은 없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대여금고 2곳에서는 7억~8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때는 시중은행 대여금고 7곳이 무더기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전 전 대통령 본인과 부인 이순자씨 명의가 아닌 동생 이창석씨 등 친인척 명의의 금고였다. 안에서는 예금통장 50여 개와 금 등 귀금속 40여 점이 발견됐다. 현금이나 무기명 채권은 없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대여금고 2곳에서는 7억~8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됐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