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큰손’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는 기업과 주식시장, 국가를 출렁이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 자산을 굴리는 공적연금이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 결정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출신 인사는 아예 후보 배제
이사 경력 홈페이지서 확인 가능
“한국도 독립·투명성 강화 위해
기금운용본부장 선발과정 공개를”
실제로 2014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GPIF의 운용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채권에만 기대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라’는 총리의 지시에 GPIF는 주식 투자 비율을 24%에서 50%로 올리고, 국채 투자 비율을 60%에서 35%로 내렸다. ‘주가 부양’을 위해 연기금의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GPIF의 운용 수익률은 0.4%로 전년(12.4%)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글로벌 증시가 동반 하락한 2015년 3분기엔 사상 최대인 7조9000억 엔(약 79조원)의 운용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선출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누구든 CPPIB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사회 12명의 인적 구성과 이들의 학력 및 관련 경력, 가족 관계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1인당 A4용지 1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적혀 있다.
실제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전문성 면에서 국민연금과 차원이 다르다. CPPIB 이사회는 12명 중 9명(75%)이 금융회사나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나머지 구성원도 대부분 2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3명 역시 금융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교수와 변호사 출신이다. CEO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위원회가 선임한다. CPPIB의 최근 5년 자산 운용 수익률은 10.6%로 일본 GPIF 수익률(6.3%)을 훌쩍 뛰어넘는다.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정치적 논란이 벌어진 적도 없다.
일본과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분리했다고 독립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제도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독립성 강화를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자는 주장을 한다.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공사화든 아니든 핵심은 ‘인사권’이다. 공사화를 해도 대통령이 수장을 임명하는 구조라면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어떤 형태든 낙하산을 차단할 실질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의미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결국 독립성과 투명성은 공개에서 나온다”며 “CIO 이상 고위직의 선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지원자의 실력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국민연금의 히딩크’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정부의 압력이나 여러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외국인 전문가에게 과감히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금이 추구해야 할 운용 철학과 보장 수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는 지적도 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이라는 제도 내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맡을 것인지, 구체적 목표가 무엇인지 등을 국회에서 먼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법(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 Act)’을 통해 CPPIB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명확히 규정했다.
장원석·심새롬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