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비수기? 입소문 타고 흥행
10월은 전통적으로 ‘극장가 비수기’로 통한다. 9월 추석 시즌 이후부터 12월 크리스마스 전까지, 약 두 달 동안이 한국 영화계의 휴식기인 셈. 그래서 이 시기에는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피하고, 주로 외화나 흥행 리스크가 적은 중급 영화(제작비 20~50억원)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를 살펴봐도, 이 시기에 개봉해 흥행한 한국영화는 ‘타짜’(2006, 최동훈 감독, 568만 명)와 ‘완득이’(2011, 이한 감독, 531만 명) 정도다.
‘럭키’의 흥행 비결 분석
‘웃음’으로 관객의 피로감 해소
우선 ‘럭키’는 ‘코미디영화는 흥행에 한계가 있다’는 통념을 깨뜨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가 지닌 강점을 “코미디 그 자체”라 평했다. “진지하고 기괴하며 폭력이 난무한 영화들로 인해 피로가 쌓인 관객이,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찾았다”는 것. 올해 흥행한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동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 ‘밀정’(9월 7일 개봉, 김지운 감독) ‘곡성’ ‘아가씨’(6월 1일 개봉, 박찬욱 감독) ‘아수라’ 등은 각각 좀비·액션·미스터리·스릴러·누아르 장르로, 감정 소모가 큰 ‘센 영화’들이었다. “‘럭키’에는 욕설이나 과한 폭력이 없어서 더욱 재미있게 즐겼다”라는 다수의 관객 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존 한국형 코미디와 다르다는 점도 ‘럭키’의 흥행 요인 중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조폭 마누라’ 시리즈(2001~2006), ‘두사부일체’ 시리즈(2001~2007), ‘가문의 영광’ 시리즈(2002~2012) 등 조폭 코미디영화 시리즈가 붐을 이뤘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계속 등장하며 관객이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후에는 ‘앞에서 빵빵 웃음을 터뜨리고, 뒤에서 펑펑 울리는’ 신파 공식이 유행했다. 물론 ‘럭키’에도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폭력의 강도는 낮다. ‘럭키’의 킬러(유해진)는 화려한 칼 기술로 김밥을 썰고, 어쩔 수 없이 내뱉는 욕설 한마디에 스스로 안절부절 못하는 식이다. 또한 코믹하게 진행되다 반전을 일으키지만, 신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눈물보다 ‘꿈을 이룬다’는 감동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엔딩은 시국이 어지러운 지금, 관객에게 웃음으로 위로를 전한다.
‘믿고 보는’ 유해진
‘럭키’의 흥행엔 유해진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가 크게 작용했다. 물론 인지도 있고 호감도 높은 배우라 해도, 그것이 작품의 흥행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유해진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현재까지 관객 600만 명이 유해진을 보기 위해 기꺼이 극장을 찾았다. ‘럭키’의 성공은 곧 ‘믿고 보는 배우’로 우뚝 선 ‘유해진의 성공’이다.
예상 뒤집고 좋은 성적 거둔 코미디영화
관객 수 1281만 명. 어느 누가 ‘7번방의 선물’이 ‘1000만 관객’을 넘을 것이라 예상했을까. 당시 유행했던 ‘부성애’ 코드와 웃음과 감동, 눈물 쏙 빼는 신파로 역대 국내 코미디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관객 수 865만 명. 심은경을 ‘최연소 흥행 퀸’으로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의 흥행 바람 속에서도 유쾌한 복고 음악과 심은경의 열연이 관객 마음을 사로잡았다.
관객 수 736만 명. 제작비를 많이 들인 것도(총제작비 55억원), 눈길을 사로잡은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었지만, ‘써니’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칠공주’의 활약, 그 시절 유행한 음악 등 과거의 앨범을 꺼내 보듯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40대 이상 여성 관객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관객 수 490만 명. ‘도둑들’(2012, 최동훈 감독)의 흥행 열풍을 뚫고 코미디 사극의 흥행을 이끌었다. 조선 시대의 ‘얼음 전쟁’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오락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