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전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이는 '걷기왕'의 공동 작가이자 스크립터로 참여한 남순아 작가. 남 작가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영화 촬영 현장 성희롱 예방 교육에 대해 명시한 것을 보고, 바로 노조 측에 "저예산 영화도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노조 측으로부터 "그렇다"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백승화 감독과 제작진에게 "함께 교육받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바로 추진할 수 있었다”고 남 작가는 말한다.
남 작가는 '걷기왕' 스크립터 일을 제안받고 "지금까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접한, 다양한 성희롱 사례가 떠올랐다"고 한다. 남성 스태프들의 성적인 농담, 불편한 스킨십 등등. 특히 '걷기왕'은 그가 시나리오 작업부터 참여한 작품이라 애정이 남달랐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추진했다. 백 감독과 남 작가가 한국여성민우회 측에 함께 연락했고, 촬영 현장에서 총 스태프 중 3분의 2 정도가 모여 교육받았다. 그리고 교육 내용을 촬영 현장에 맞게 정리한 '성희롱 예방 매뉴얼'을 제작해 콘티북에 실었다. 콘티북에는 피해자·행위자·동료를 위한 매뉴얼과 촬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열 가지 생활 수칙이 수록됐다. 그리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 연락처가 명시돼 있다. '걷기왕' 촬영 현장에서 교육을 진행한 한국여성민우회 최진협 사무처장은 "영화계에서 연락받은 것이 처음이라 놀랐다. 교육 진행 후 스태프들이 영화계에 만연한 성희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더라. 어떤 분은 '스태프뿐 아니라 제작사·프로덕션 등의 책임자 대상 교육도 진행해 달라'고 하더라. 이번 교육이 영화 촬영 현장의 성희롱 문제를 개선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다른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여성 스태프들이 '성희롱 예방 교육은 자신의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제작사에서는 예산에 성희롱 예방 교육 비용도 포함시켰으면 한다. 많은 것을 한 번에 바꾸진 못하겠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작은 시작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