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모(36)씨는 요즘 온 가족이 열대야에 잠을 설친다. 하지만 에어컨은 틀 엄두를 못 낸다. 지난해 여름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던 경험 때문이다. 에어컨을 하루 3시간가량씩 틀었더니 한 달에 7만~8만원 내던 요금이 20만원대로 뛰었다. 윤씨는 “전기료 부담 때문에 열대야에도 에어컨을 켤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주택용 전기에만 6단계 누진제
500㎾h 넘는 구간은 1 ㎾h당 709원
상점은 105원으로 6배 이상 차이
70년대 오일쇼크 때 만든 제도
“저유가 이어질 때 누진제 손질을
저소득층 상대적 불이익 배려해야”
이런 누진 체계는 1970년대 오일쇼크가 터졌던 시절 부족한 전기를 될 수 있으면 산업용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올 초 누진제 6단계 중 4단계 요금을 3단계 요금으로 낮춰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슬그머니 사라졌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누진세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 가구별로 희비가 엇갈리며 사회적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누진제 단계를 축소하면 전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가정은 유리하지만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은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 저소득층보다 중산층 이상 가구가 이득을 보는 가격 구조로 변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전반적인 요금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한전이 10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리면서 산업계 등에서도 전기요금을 깎아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산업부는 당장 요금을 깎아주기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투자가 시급한 시점”이라며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우면 장기적으로 전기료 부담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나친 누진제가 에너지 가격 체계는 물론 사용행태, 경제구조까지 왜곡시키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유가가 이어지고 한전이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지금이 누진세를 손볼 적기”라며 "저소득층을 위한 대책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