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한다. 국민이 애플의 팀 쿡 CEO를 공직자로 뽑아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파룩은 숨졌고, 그의 아이폰을 넘겨받은 샌버너디노 카운티 당국은 공권력이 이 전화기를 수색하는 데 동의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영장까지 확보한 상태니 수색의 법적 근거는 명확해 보인다.
애플, FBI 보안해제 요구 거부
미 정부의 사생활 침해가 원인
안보·사생활 경중 판단, 정부 몫
의회 통한 합법적 해제가 해답
2013년 10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국가안보국은 영국 정보국과 함께 구글과 야후의 해외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광섬유 케이블을 해킹했다. 국가안보국은 해당 정보의 일부분에 대해선 합법적인 접근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안보국은 이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해킹으로 정보를 얻었다.
해커들을 양산해 온 실리콘밸리 업계는 정작 자신들이 해킹 대상이 되는 건 원치 않았다. 스노든의 폭로 직후 구글과 야후는 자사 서버에 송수신되는 데이터를 암호화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듬해인 2014년 9월엔 애플도 자사 스마트폰에 데이터 암호화 기능을 기본 옵션으로 설정한다고 발표했다. 애플 스스로도 고객의 전화기를 열어볼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엔 이런 얘기가 스파이들의 암투를 다룬 만화에나 나올 법한 케이스로 여겨졌다. 하지만 샌버너디노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미 법원이 애플에 “파룩의 아이폰 보안장치를 풀어 FBI의 수사를 도우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 근거는 만든 지 200년이 훨씬 지난 구닥다리 법안이었다. 1789년 입안된 ‘모든 영장법(All Writs Act)’이 그것이다.
애플은 강력 반발하며 성명서를 냈다. “우리가 FBI의 요구를 거절한 건 파룩의 아이폰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번 보안을 풀면 다른 아이폰의 보안을 위협하는 조치도 정부가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해외의 범죄자나 독재 국가들도 이를 악용해 아이폰을 마음껏 해킹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애플은 미국 정부의 보안 해제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나라 정부들도 테러범 수사 등의 명목으로 같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을 가장 걱정한다. 사실 지구상의 몇몇 국가는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를 테러리즘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2015년 4분기에만 아이폰 수천만 대가 팔린 중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애플이 파룩의 아이폰 보안을 풀면 이런 나라들에서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또 FBI가 파룩의 아이폰 보안을 풀게 돼도 기대만큼 수사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테러를 계획하는 사람은 다른 국가의 통신 서비스를 통해 내용을 암호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와 민간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고, 디지털 시대에도 적합한 새로운 사생활 보호법을 제정해야 할 때다. 기술과 사생활의 미래에 대한 결정은 국민과 그들의 대표인 정부가 내려야 한다. 아무리 숭고한 의도라도 돈과 연관시켜 결정을 내리는 게 생리인 실리콘밸리 사기업에 맡겨선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사기업 제품의 보안장치를 강제로 풀고 싶다면 의회에 요청해 법을 만든 다음 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실리콘밸리가 공권력의 정보 수집에 한계를 설정하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민주적이다. 우리는 개인정보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권을 주장하는 정부와 그런 권한에 한계가 있다고 버티는 기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로버트 레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