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 발표한 공상과학(SF) 소설 『해저 2만리』의 심해 탐사가 대표적이다. 1997년에 제작된 일본의 잠수정 ‘가이코’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불리는 마리나아해구 바닥까지 도달했다. 가이코는 깊이 11㎞의 해구로 내려가기 위해 1㎠당 8t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음달에 새로운 속편이 개봉되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상상력이 만든 작품이다. 레이저 무기, 복제 생명체(clone), 두 발로 걷는 로봇 등 38년 전 개봉 당시의 과학을 뛰어넘은 조지 루카스 감독의 공상이 기반이 됐다. 한 세대 전 스타워즈에 담겼던 상상은 얼마나 현실이 됐을까. 인류는 이제 다스베이더 제국군과 맞설 준비가 됐는지를 살펴봤다.
검은 마스크로 상대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다스베이더. 그가 지휘하는 ‘행성 파괴 우주 전함’은 우주 공간을 서서히 전진한다. 이 전함을 움직이는 동력은 파란 불꽃을 분사하는 ‘이온 엔진’이다. 원자보다 작은 이온을 내뿜어 추진력을 얻는 이온 엔진은 이미 개발됐다. 98년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딥 스페이스’는 이온 엔진을 장착한 최초 탐사선이다. 딥 스페이스는 크세논 가스를 극성을 가진 이온 상태로 바꾼 뒤 전기가 흐르는 금속 그물에 통과시켜 추진력을 얻는다. 이온은 시속 10만㎞ 속도로 뿜어져 나온다. 이온의 질량이 워낙 작아 단시간에 큰 추진력을 얻진 못하지만 꾸준히 분사하면 마찰력이 없는 우주에선 속도를 계속 높일 수 있다. 탐사선 속도는 발사 초기 초속 10m에 불과했지만 1년 후 초속 31㎞를 기록할 정도로 빨라졌다. 이 엔진은 작고 가벼워 ‘미래형 엔진’으로 불린다. 딥 스페이스 1호가 하루 소비하는 연료의 무게는 100g에 불과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본
파란 불꽃 이온 엔진
1998년 우주선 첫 장착
스타워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은 광선검으로 대표되는 레이저 무기다.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가 휘두르는 광선검이 맞부딪치는 모습은 명장면 중 하나다. 루카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동양의 칼싸움과 레이저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제다이들의 새로운 전쟁 방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55년 미국 과학자 찰스 타운 등이 개발한 레이저는 금속을 자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레이저 무기 개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한국 국방과학연구소는 99년 수백m 떨어진 철판을 레이저로 관통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미 해군은 실전에 배치된 레이저포를 지난해에 공개했다. 레이저포는 영화 속 장면처럼 발사 장면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1.6㎞ 떨어진 보트를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발사비용은 한 발에 1달러 수준으로 저렴하다. 레이저포와 달리 광선검 개발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빛 입자인 광자(光子)를 가둘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직진하는 성질을 지닌 빛을 가두는 건 어려운 일이다. 2013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는 온도를 낮춘 루비듐으로 광자들을 가둘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논문이 실렸다. 하지만 가둘 수 있는 광자의 수가 수개에 불과해 광선검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에 참여한 미 양자연구소 알렉시 고르시코프 박사는 “광선검 개발을 위해 이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해군이 실전 배치한 레이저 포.
스타워즈의 깡통 로봇 ‘R2D2’가 행성파괴무기 설계도를 보여주는 장면에 등장하는 홀로그램(hologram)은 현실에선 만나기 힘들다. 소녀시대 등 아이돌 그룹을 담은 홀로그램 콘서트가 2013년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이는 ‘유사 홀로그램’에 불과하다. ‘유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건 얇은 플라스틱판에 광선을 쏴 3차원으로 보이게 만든 것에 불과해서다. 스크린에 빛을 쏘는 영화관과 비슷하다. 김은수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3차원 홀로그램은 360도 어느 방향에서 보든 뚜렷한 형체를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유사 홀로그램’은 플라스틱판이 없으면 형체를 만들 수 없어 홀로그램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력을 사라지게 하는 반중력 장치 개발도 요원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과 시간, 공간은 분리할 수 없는 한 개념이다. 서강대 물리학과 김원태 교수는 “물리학에선 반중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반중력 장치는 현실에선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이온 엔진=이온 분출로 추진력을 만드는 장치. 제논·크세논 등 불활성 기체에 전자를 쏴 양이온 형태로 바꾼다. 그 뒤 전기를 이용해 양이온이 분출되도록 해 추진력을 발생시킨다.
◆반중력 장치=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특수 장치.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을 상쇄시켜 비행체가 중력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