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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타계한 전 성균관대 교수 이명영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20일 72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명영(李命英.72) 전 성균관대 교수는 30여년간 김일성(金日成)연구에 열정을 바친 북한연구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후학들은 李교수를 "논리적이고 학문적 열정이 대단했던 분" 으로 회고했다.

김일영(金一榮)성대 정외과 교수는 "고인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일제시대 공산주의와 김일성 관련 희귀자료들을 수집해 세미나 시간마다 공개하곤 했다" 고 말했다.

그는 만주지역을 답사해 일제시대 '김일성' 과 관련한 인사들의 증언과 일본 문서기록 보관소에 나온 '김일성 체포' 기사를 근거로 "일제시대 4명의 김일성이 있었다" 고 전제하면서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은 일제시대에 활약한 '김일성' 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라는 주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김일성의 가짜' 여부를 놓고 서대숙(徐大肅.하와이대)교수와 벌인 논쟁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균관대 제자로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씨는 "선생님의 '가짜 김일성론' 에는 견해를 달리하지만 김일성 관련 증언과 자료를 집대성 해 후학들이 이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은 평가할만하다" 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저술한 '김일성 열전' '권력의 역사' 등은 북한연구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평생동안 북한연구에 열정을 바쳐온 고인이었지만 정작 남북정상회담 때는 병세가 악화돼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장녀 지혜(智惠.40)씨는 "아버지는 투병중에도 정상회담에 대한 뉴스가 나올때마다 안경을 찾으며 뉴스를 보려고 애쓰셨다" 며 "몸이 워낙 불편해 아무 말씀은 없었지만 표정은 상당히 굳어지시곤 했다" 고 전했다.

맏사위 채두원(蔡斗源.44)씨는 "장인은 오랜기간을 '통치자' 로 훈련된 김정일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모른다고 개탄하시곤 했다" 며 "정상회담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북한보다 이념무장이 취약한 우리측이 북한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겠느냐는 점을 늘 우려했다" 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체제붕괴가 임박한 상태에서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고 햇볕정책을 써서 북한을 도울 경우 분단이 지속된다는 것이 장인의 입장이었다" 며 "때문에 햇볕정책이나 정상회담에 대해선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고 덧붙였다.

함북 북청 출신의 李교수는 1948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얻은 후 93년까지 이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 63년부터 7년간은 경향신문에서, 71년부터 75년까지는 중앙일보에서 각각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지수(志樹)씨와 딸 지혜.지연(智姸)씨가 있다. 발인은 22일 오전 7시 30분 서울대 병원. 760-2011~2.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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