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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만화가 박광현씨 딸 탤런트 박원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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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호방한 이야기와 섬세한 붓터치로 우리나라 만화계에 큰 획을 그은 분이세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데생이나 붓터치 솜씨는 타고 나신 분이죠. 맏딸인 저를 정말 아껴주셨어요. 아버지 작품이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탤런트 박원숙(54)씨는 두툼한 만화책 표지를 어루만졌다. ‘그림자 없는 복수’. 1940-50년대 삽화체 만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만화가 박광현(1928-78)의 대표작이다.

1958년 출간돼 '야광주'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작품이 최근 부천만화정보센터(이사장 성완경)에 의해 복간됐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각색한 이 작품은 특히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번안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방대한 원작을 그대로 옮기면 지루한 대목이 많아 줄거리만 간추렸기에 문학적 기품이라든가 하는 것은 엿볼 수 없다"는 저자의 솔직한 말도 이색적이고, 말미에 붙어있는 50년대 작가들의 작품 광고 역시 흥미롭다.

48년 '푸른 망또''쌍칼'로 만화계에 뛰어든 박광현은 독립군 등 역사적 소재와 사실적 표현을 중시한 화풍을 선보였다. '요술성냥''최후의 밀사''엽전 열닷냥''쌍룡검' 등에서 드러난 그의 화풍은 박기당.김종래 등 당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은 권투를 즐기시는 아버지가 무섭다고 했지만 사실 정이 많으셨다"며 "어릴 적 아버지와 인사동으로 말총 붓과 고급 펜을 사러가면 꼭 단성사 옆 중국집, 스카라극장 옆 콩국수집 같은 맛있는 집으로 데려가셨다"고 회상했다.

부산 피란시절 미 대사관 공보처 홍보부서에서 근무했던 박광현은 전쟁이 끝나자 박기당.신문수 등과 함께 '만화소년'을 창간, 경영자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78년 2월 후두암이 발병, 병원에 입원한 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 인심이 무섭더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만화원고 수금이 하나도 안되는 거예요.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졌죠. 화병을 얻으신 어머니는 어느날 남아 있던 아버지 원고를 다 태워버리셨어요. 도공의 아내가 고려자기를 다 깨뜨린 격이랄까. 지금 생각하면 참 후회가 되죠."

이번 복간에는 개인적으로 만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오경수(48)씨의 도움이 컸다. 그가 수집해온 50~60년대 만화 중에 기적처럼 박광현의 작품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만화를 다시 보니 욕심이 난다"고 말한 박씨는 "동생이 가진 약간의 원고를 합쳐 계속 아버지의 유작을 복간하고 싶어요. 그게 자식의 도리겠죠"라고 했다.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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