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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정상 "평양의 핵·미사일 노선 용인 못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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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오찬에서 세르게이 러시아 외무장관(오른쪽), 현오석 부총리(왼쪽)와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양국은 국제사회의 요구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에 반하는 평양의 독자적인 핵·미사일 능력 구축 노선을 용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에서 가진 정상회담 후 채택한 ‘한·러 공동성명’을 통해서다. 두 정상은 또 북핵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포함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기로 했던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북한에 촉구했다. 이어 “6자회담 당사국들과 공동으로 회담 재개의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북핵 불용’ 선언은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 합의된 내용에 비해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평양과 북한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핵보유국 지위 인정의 불허를 명시했다. 한·러는 또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을 심화시키기 위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러시아 안보회의 간 협의체도 신설키로 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 북핵 불용 원칙과 북한의 9·19 공동성명 이행 촉구 내용을 담은 데 이어 러시아로부터도 북핵 문제에 대한 강경한 메시지를 이끌어내게 됐다.

 성명에는 또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에) 공감을 표하고, 러시아 연방이 한반도 신뢰 구축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고 언급했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에 따라 중국·러시아를 비롯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 5개국이 모두 박근혜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지지 의사를 공개 천명한 게 됐다.

 이번 회담에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의 첫 단추도 끼워졌다. 박 대통령은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한국의 유라시아 협력 강화 정책과 러시아의 아태 지역 중시 정책을 상호 접목해 서로의 잠재력을 최대한 구현함으로써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한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새로운 미래의 유라시아 시대를 만들어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진 오찬에서 “박 대통령이 주장한 아이디어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두 정상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이행 방안으로 남·북·러 삼각협력 사업인 나진(북한)-하산(러시아) 물류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러시아의 대외경제개발은행이 공동으로 30억 달러 규모의 투·융자 플랫폼을 구축해 투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공동투자 플랫폼 MOU도 맺었다. ▶한국 기업이 러시아로부터 LNG 운반선 13척 이상을 수주하고 대신 기술 이전을 해주는 조선산업 협력 ▶한국 선박의 북극항로 활용을 위한 극동지역 항만 개발 협력 등도 합의됐다. 한·러 비자 면제 협정과 문화원 설립 협정도 타결됐다.

 한편 두 정상은 성명에 “최근 역사 퇴행적인 언동으로 조성된 장애로 인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강력한 협력 잠재력이 완전히 실현되고 있지 못한 것과 관련해 공동의 우려를 표시했다”는 내용을 담아 일본의 역사 왜곡을 경고했다.

 ◆정상 서명식, 기자회견 줄줄이 지연=이날 하루 일정으로 방한한 푸틴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30분 늦게 회담장인 청와대 본관에 나타났다. 당초 푸틴 대통령은 오후 1시에 도착해 오후 1시5분부터 박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지만 실제 회담은 오후 1시30분쯤에야 시작됐다. 1시간가량 예정된 정상회담도 두 시간 가까이로 늘어나 오후 3시30분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양국 정상 협정서명식, 공동 기자회견 등의 일정이 줄줄이 늦어졌다. 푸틴 대통령의 ‘지각’은 정상회담 전 일정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러 비즈니스 다이얼로그 개막식에 참석해 연설한 데 이어 러시아 전통 격투기인 삼보 관계자들도 만났다. 그 여파로 오후 3시15분 예정됐던 정상 오찬이 1시간30분 늦어진 오후 4시45분에야 열렸다. 오찬을 정오가 아닌 오후 3시15분으로 잡았던 것은 두 정상의 일정이 오찬부터 시작하는 게 어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그랬던 오찬이 더욱 늦어지며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장관 5명,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동석했던 우리 측 인사들과 러시아 정부 관계자 등 81명이 오후 5시를 앞두고 ‘늦은 점심’을 하게 됐다.

신용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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